호명
-박선우
어둠이 문 밖에 앉아 시간을 조준하고 있다
연명치료를 그만둔 시점에서 의사의 역할은 사망시간을 알리는 일일뿐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건 고통과 죽음의 관계가 동반자라는 것이다
어둠은 칼이며 바늘이다
어둠의 특기는 찌르고 베어 내어 어둠 하나를 더 만드는 일
극단적인 포퍼먼스가 매번 흥행이다
오늘도 찰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꺼내들고
킬킬거리며 웃어대는 다크나이트를 지난다
초조함 속에 박힌 대못이 쑥 빠져 나온다
잔뜩 찌푸린 미간이 순하게 펴지고
호명당한 이름이 관을 슬쩍 빠져 나온다
절개지
-박선우
햇볕이 번식하기 딱 좋은 날
뭉텅 잘려 나간 생각을 찾아 나섰다
붉은 맨살을 본다
봉합이 쉽지 않음을 직감한다
좌절감이 뒷목덜미를 잡아끈다
포클레인의 이빨 자국이 선연하고
나무의 직립이 휘어진다
뿌리의 악착이 처연하다
잔뜩 힘이 든 나무의 어깨에
사나운 이빨이 꽂힌다
물렁뼈가 착각을 버린다
한 번의 치명이
복원 할 수 없는 지점까지 끌고 가는
극단의 방식
뿌리째 뽑히지 않으려고 버티는 속성이
나를 닮았다
포클레인이 멈춰서고
달아났던 햇볕이 어느새 돌아와
흙의 맨살을 핥고 있다
내 몸에서 환각통이 도진다
나를 벗어난 아린 생각들
언제까지 어디로 끌려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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