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 2018-2019

오른손은 모르개/ 이장욱

네잎 2011. 8. 24. 18:14

왼손은 수십 개의 사소한 실망들을 알고 있다.

왼손은
조금 더 가까운 데서 생각한다. 왼손은
먼저 떨린다.
지붕 위에 내려앉는 새들의 무게와 함께
밤의 이동속도로
나의 왼쪽에서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색.
왼손에겐 친구가 필요해.
아주 분명한 친구.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목으로
악수를 청하는 친구.
왼손이 좋아하는 것은
갑자기 왼손이 되는 것.
안개야 양떼처럼 흩어질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왼손은 사냥개가 되는 것.
그것에 꽂히는 것.
매일 오른손도 모르게
왼손이 사라진다.
세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가리켜야 할 것들이 많은데
스르르 펴진 뒤에 왼손은
낯선 이에게 인사하는 데 천재.
쥐락펴락 혼자 손금을 만들다가 불현듯
그것이 되는 것 역시.
한낮의 거리에서 당신과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당신의 손바닥을 뚫고 튀어나간
나의 왼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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