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 2018-2019

성나무 앞에서의 목례/ 이승하

네잎 2011. 8. 26. 11:36

聖나무 앞에서의 목례

  

  이 승 하

 

  가을 깊은 날에 나 홀로
  인적 드문 매봉산 숲길을 걷다가 보았다
  드문드문
  고사목이 잎 푸른 사철나무 사이에 서 있음을

  나이테 더 두를 일 없는 저 나무가
  조용히 서서 썩어가는 동안
  주변의 나무들은 잎 틔우고 잎 떨구고
  새둥지 마련해주고 벌레들을 키우는구나

 

  고사목은 시커멓다
  죽어도 시신 수습해주는 이 없으니
  죽은 그 자리에서 육탈할 수밖에 없는 나무
  세상의 모든 나무는 저 자세로 풍장하는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서서히 썩어가는 저 나무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
  인적 드문 숲길을 걷다가 해보았다

  나무들 앞에서 목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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