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나무 앞에서의 목례
이 승 하
가을 깊은 날에 나 홀로
인적 드문 매봉산 숲길을 걷다가 보았다
드문드문
고사목이 잎 푸른 사철나무 사이에 서 있음을
나이테 더 두를 일 없는 저 나무가
조용히 서서 썩어가는 동안
주변의 나무들은 잎 틔우고 잎 떨구고
새둥지 마련해주고 벌레들을 키우는구나
고사목은 시커멓다
죽어도 시신 수습해주는 이 없으니
죽은 그 자리에서 육탈할 수밖에 없는 나무
세상의 모든 나무는 저 자세로 풍장하는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서서히 썩어가는 저 나무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
인적 드문 숲길을 걷다가 해보았다
나무들 앞에서 목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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