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깔 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_ 강원도편
형수
이상국
서둘러 저녁이 오는데 헐렁한 몸빼를 가슴까지 치켜 입고 늙은 형수가 해주는 밥에는 어머니가 해주던 밥처럼 산천(山川)이 들어있다
저 이는 한 때 나를 되련님이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쥐눈이콩 한 됫박을 비닐봉지에 넣어주며 아덜은 아직 어린데 동세가 고생이 많겠다고 한다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1976년 ≪심상≫으로 등단.
진또배기
이홍섭
젊은 날, 해변을 떠돌다
진또배기를 만나면 반가웠다
푸른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녔지만
사람이 깎아 만든 새가
그토록 정다웠던 이유를 몰랐다, 새를 쳐다보며
아득히 외로웠던 이유를 몰랐다
이제는 외로움의 경계를 아는 나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나와 당신의 경계를,
발아래 사무치는 파도의 외로움을 아는 나이
하늘에는 새가 날고
사람이 깎아 만든 새는
영원히 고독을 나느니
오늘은
서쪽 구름이
새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 진또배기 - 강릉에서 솟대를 지칭하는 말
1965년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울구다*는 말
김남극
울구다는 말을 공책에 적어놓고
경건하게 내려다본다
무엇을 울게 한다는 것인지
무엇을 짜낸다는 것인지 궁금해
며칠 내내 속을 울궈낸다
창밖 소나무는 제 속을 울궈
겨울바람 속으로 제 몸 소리를 보내고
나는 내 속을 울궈
시 몇 줄 쓰려고 밤을 새운다
세월은 그 시간을 울궈
흰 서리를 밭고랑*에 쌓고
나는 시간을 울궈
후회와 미련만 공책에 쌓으면서
뒤란 웅굴*에서 샘물을 떠다
밤새도록 차를 울군다
*울구다: ‘우리다’의 영동 방언, *고랑: ‘이랑’의 영동 방언, *웅굴: ‘우물, 샘물’의 영동 방언
강원도 봉평 출생. 2003년 ≪유심≫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
■ 색깔 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_ 경상도편
탯말, 아름다운 오해
정일근
고등학교 후배 이성배 시인을 나는 평생 [이승배]라 부르고
이성배라 적었다, 마산에서 태어난 그 역시 쉰이 넘도록
제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는 사람 없었다
스스로도 제 이름 바르게 말하지 못했다
그는 이성배란 이름으로 태어나 [이승배]로 살고 있다
[이승배]로 살다 [이승배]로 죽을 것이다
‘ㅓ’와 ‘ㅡ’의 구분이 되지 않는 경상도 탯말의 아름다운 오해
집단적인 체면
경남 진해 출생.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어머니 똥점 치시며
김일태
입으로 내보내는 기나 뒤로 내보내는 기나 구린내 나면 모두 똥이지머 소금 먹은 넘 물켜게 돼 있고 싸놓은 거 보면 속내 다 알 수 있는 기라 콩자반 맨쿠로 똥글똥글 뭉쳐내는 넘들은 겁이 많고 펑퍼짐하게 싸질러내는 넘들은 게을러빠졌고 참말로 무서분 것이 흰똥 싸는 넘들이기는 한데 별의별 넘들 중에서도 젤로 수상쩍고 고약한 것이 독사처럼 똥을 따뱅이* 틀어 누는 넘들이라꼬
*따뱅이 : ‘똬리’의 경상도 방언
199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추석
권선희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겄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소식 는 기겠재?
글재?
1998년 ≪포항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 색깔 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_ 전라도편
어떤 벌(罰)
조성국
식전 댓바람부터 씩씩거린다
코 짜부라지다시피 땅딸한 아랫방새댁이
갑 붙은 개 한 쌍을
간짓대 들고 막다른 고샅에까지 몰아 부치더니
그것도 여의치 않아 싶었는지
찬물 한 바가지 냅다 찌끄러대다 그만
다릿심이 반남아 풀려서
나락 말리는 멍석 맡의 당그래에
이마빡을 된통 얻어맞았다
그걸 치어다보던 지아비 왈
저도 엊저녁에, 누가 간짓대 들고 와 쌔려불고
물을 짝 찌끌어되면 좋아했까니,
훼방을 놓았냐고 퉁을 주다가
슬그머니 뒤돌아서는 분반 지경의 꼬락서니를
데억지게 나무라던 시어머니
그예 벌쭉거리는 속내를 끝내 참지 못하고
멋쩍게 이런다 아가, 삼신할미가
되게 노해서 벌을 주었는갑다!
1990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수배일기’ 외 6편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중년을 위한 노래
정윤천
광주에서, 이를테면 언더구라운드에서 노래하며 지내는 가수 형이 모처럼 산사 음악회란 곳에 불려가 노래 몇 곡을 팔게 되었다. 근디 그거시 하필이면 비구승만 거하시는 청량도량이었던가 보더라. 공연 시간이 아즉 어중간해서 절 마당가 한비짝에 어칠비칠 하던 그에게, 대빵 스님 처소에서 차나 한 잔 하시라는 전갈이 왔더란다. 다탁을 마주하고 주지 스님과 뻘쭘하게 마주 앉았는데, 처사는 주로 무슨 노래를 부르신다요. 별시러운 뜻없이 파적 삼은 스님의 말 끄터리에다가 대고 순진한 그가 고해 올렸다. 예, 저는 주로 칠공팔공 쪽으로 중년을 위한 노랠 헙지요. 갑자기 스님 목성이 두어 옥타브나 높아졌다. 머시여. 중년덜을 위해설랑 노래럴 헌다고.
헐수읎이 가수 형이 자초지종을 털어 바쳤다. 그러니까, 지가 말허는 중년은 재가(在家)중년덜을 이르는 것입니다요. 알어, 알어, 찻잔을 채워주며 스님이 삥긋 웃었다. 오늘 밤은 기냥 출가 중년덜 한테도 한바탕 쏟아부시요.
가을 산중 위로
가을 산중 위로
중년들을 위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달맞이 꽃이
노오란 대갈통들을 밀어 올리며 하나 둘씩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199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박수량
고영서
시방은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당가
긍게 그 냥반이 암 것도 안묵었다등만
접대도 안받겄다 뇌물도 안받겄다 그랬다 그 말이제
명색이 판사를 했는디 높은 자리서 안묵는다는 것이 애럽제
그 냥반 초상을 치룰라먼 한양서 장성까지 와야 헌디
고향땅 밟을 운상비가 없어 을매나 기가 맥힌가
백성 위한 거이 장헌다고 임금이 상을 내린 것이제
고향에 장사를 지내되 묘를 크게 말라던
청빈한 삶 구구절절 써내려가랴
깨깟하게 살아서 암것도 안썼다는
백비白碑*
* 문화재자료 제103호, 전라도 기념물 제198호로 지정된 백비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있다. 당시 명종은 그의 넋을 안타까워하며 장례비용을 마련해주고, 서해바다의 돌을 골라 비를 내리라고 명하였다.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 색깔 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_ 제주도편
름 고망 너울 고망
한기팔
제주 섬은 처음부터
름뿐이라수다
너울뿐이라수다
름 고망
너울 고망
제주 사름 가슴처럼
고망 버룽버룽 섬
제주 섬이
어디 그냥 섬이우꽈
제주 바당이
어디 그냥 바당이우꽈
름 메경 그늘루곡
너울 메경 그늘루곡
처음부터 제주 섬은
름 고망이 숨고망이라수다
너울 고망이 목숨고망이라수다.
註 : 름-바람, 사름-사람. 고망-구멍, 〜이우꽈-〜입니까, 메경-먹여, 그늘루곡-거느려 키우다
1975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심사: 박목월 시인)
배방선
오승철
음력 2월 제주에선
“꽃샘추위 왔다” 마라
그냥 풍문이듯
“영등할망 왔다” 하라
바다도 사랑을 품으면 말처럼 들락퀸다
칠머리당 영등굿은
사랑을 달래는 일,
눈보라 파도소리
징으로 우는 열나흘 날
섬 뱅뱅 걸팡진 이별 씨점굿을 벌인다
장삿길 아버지는
어떤 점괘 나왔는지
절 잘락 바람도 잘락
짚으로 엮은 어머니 배,
이 섬의 서러운 불빛
떼어내듯 방쉬하듯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요자기
강영란
요자기라 써 볼까? 아니면 소리 나는 대로 요작이라 써 볼까
요자기라고 쓰면 무슨 이조백자항아리 냄새가 나고
요작이라고 쓰면 작은 꽃잎이 살풋 벌어진 듯하고
“요 며칠 전” 이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이
요 며칠 동안 볼 붉었다
요자기라 써서 항아리 고운 곡선을 흘러내리는 빛으로나 볼까
요작이라 써서 꽃술이나 세어 볼까
그대의 사랑이 왔다 말하려는
요자기, 요작이부터
갸웃, 갸웃 거려지는 이 고민
1998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0 ≪열린시학≫ 신인상으로 재등단.
■ 색깔 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_ 충청도편
그류 그냥 냅둬
이은봉
되툉령두 사럼이잖어유
넘우 욕허지 말어유
그류 그래유 아, 되툉령이야
잘 헐려고 했것지유
국제증세가 워낙 나뿐 걸 워짼대유
넘우 그라지 말어유
그류 그 냥반, 딱허잖유
불쌍허잖어유
임기두 월매 안 남었구유
이 동네 으른인
죙필이두 암말 안 허잖유
(호이창이유 그 냥반은
이 동네 으른이라구 헐 수 지유)
아, 친인척 비리야
젼두환이 때부터 늘쌍 있어왔던 거잖어유
와이에스 때는 어땠슈
디제이 때두 그랬잖유
증작은 되툉령, 이거시 문제유
이거 애야 돼유
그러잖유 안 그류
냅둬유 넘우 그라다가
떨어져 죽으면 어떡해유
이 냥반두 속은
아주 연헌 사럼이라니께유
그류 그냥 냅둬유.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를 통해 등단.
국
이강산
이 봐라, 찬바람 분다구 국맛이 살아난다야. 콩나물 같은 것두 영락없이 때를 알아보는 겨. 낼은 아욱국 끓여먹자. 가을 아욱국은 누가 뺏어먹을까 봐 문 닫아 걸구 먹는댜.
말하자면 우리 집 국의 출생기란 대개 이런 식이다. 집 된장 맛도 맛이지만 불에 한 번 끓고 삶은 호박잎 같은 어머니의 입에서 꼭 한 번은 더 끓어 넘쳐야 우러나는 제 맛에 나는 시시때때 국을 고집하는 것이다.
음력 칠월 호박은 돈 주고도 안 바꾸는 겨.
늙은 호박이 뒷짐 지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시월이다.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한 말씀 던진다. 그러면 나는 공연히 맘이 들떠 명년 칠월을 벼르는 것이다. 호박찌개든 된장국이든 끓어 넘치는 어머니를 한번은 더 보아야겠다고 작정하는 것이다.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말言 버리고 가기
― 팔순 엄니의 벽장다수(拍掌大笑)
황희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지 왜 메고 가나’
― ?금강경? 해설에서
아이구 야덜아 글메…… 5층 할망구가 콩국수를 했다구 불르걸래 갔더니만 동네 늙은이덜이 다 뫼였더라 콩국이 너머 뻑뻑해서 메느리더러 물 좀 가꾸오라구 했어 메느리가 가꾸온 물을 콩국에 타 먹었더니만 씁씨름한 게 맛이 읎능 겨 소금을 너머 많이 넌넝게비라구 다덜 꿍시렁거리메 어거지루 그냥저냥 다 먹었지 뭐 읃어먹으메 쓰다달다 말하기두 뭐하구 해서 말여 그라구 입 가신다구 메느리가 갖다 논 물을 마셨더니만…… 아이구 이게 워짠 일여…… 그게 글메…… 물이 아니구 김빠진 소주여 소주…… 메느리가 물 가꾸오라닝께 뭘 잘 못 듣구…… 반주꺼정 할 모냥이라구 글메 그걸 가꾸옹 겨…… 그걸 콩국에 타 먹었지 뭐냐…… 다덜 벽장다수를 했어 벽장다수…… 6층 늙은이는 췌서 거기서 자아…… 야야 아이구우……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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