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우 시

2013년 리토피아에 실린 시

네잎 2014. 2. 13. 22:44

꽃의 파일을 해킹하다

 

 

몇 페이지의 텍스트를 저장하고 있는가에

벌은 온몸으로 후각을 동원하고

페스워드를 찾느라 온종일 붕붕거린다

아무래도 대갓집 규수 같은 목단이라면

천 개의 비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지

몇 마일을 날아왔을 벌이 꽃과 접속을 끝내고

꽃의 텍스트를 읽느라 정신이 없다

꽃에게도 이렇게 많은 공개할 수 없는 파일이

많다는 것 그 파일 속에는

천기를 누설할 수 없는 꽃의 비밀이

회로처럼 얽혀있고 회로처럼 얽혀있는

텍스트를 읽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안이 궁금해 촉각을 세우고 기다리는

새와 바람 밖이 시끄럽든 말든

무차별 꽃을 해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