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우 시

2014년 봄호 시와정신 발표시

네잎 2014. 3. 20. 19:17

1, 하누넘이에 해가 산다

 

허청허청 걸어오는 해를 보며

와르르 요동치던 파도가 제 몸 한 자락 펴

이불을 만들고 혼절 하듯 쓰러져 버리는 해를 눕히며

 

힘들었겠다고 바다의 안색이 어둡기만 한데

싸리꽃 같은 별들은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다

바다에서 온종일 무위도식하던 새들도

 

제 집으로 갔고 남은 건 언제나 하누넘이 바다이다

길도 없고 굴곡도 없는 그저 여자의 품 같은 바다

남편을 배웅하고 귀가하는 남편을 맞는 여자처럼

 

하누넘이 바다와 해는 서로를 받아들여하는

서로의 갈 길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치면 바다가 다독이고

 

 

바다가 푸념을 하면 해가 다독이고

하누넘이 바다와 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의 동거를 하고 있다

 

 

 

 

2, 이승을 떠나고 있다

 

가을은 딸랑딸랑 요령소리에 맞춰

이승을 떠나고 있다

나뭇잎이 만장처럼 펄럭이고

주저앉은 뼈들 일으켜

가을을 애도하고 있는 억새들

백발을 흔들고 있다

덕분에 걱정 없이 살았다고 고맙다고

만가를 부르며 상여를 따라가는 새들

세상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 어리등절

세상에 와서 마지막까지도 다 벗어주고 떠나는

영혼이 가벼운지 바람처럼

새처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