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횟집
서너 평 수족관
바다의 서사를 지느러미로 쓰고 있는
농어의 비린 필체가 활처럼 휜다
물살, 물에도 살이 있다는 말
마지막까지 실감한다
뜰채에 잡힌 부력이 곧바로 허공과 충돌 한다
낯선 눈동자들이 숨통을 조여 오니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물의 지문을 따라 회귀했던
어미의 대한 기억이 거기서 끝났다
탁, 그녀의 칼끝은 타이밍이다
기억을 잘라내는데 가차가 없다
물결무늬로 각인된 농어의 동공이 풀리고
칼끝은 빠르게 부위별로 해체를 한다
쫄깃한 공복을 느낀 바람이
살 점 하나를 물고 바다로 내 빼고 있을 동안
포를 뜬 살점이
그녀의 칼끝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죽음의 무늬가 저렇게 맑고 투명할 수 있다니
그 현란한 해체 앞에 사람들의 눈은 싱싱해지고 만다
그러나 그녀가 삼십년 넘게 되풀이 한 건
물고기 칼도마 접시만은 아니다
망각이다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비롯됐다는 비난 속에서
바다가 남편을 삼키고
자식이 소식을 끊어도
참고 참아도 되살아나는 울분이 있어
팔딱거리는 기억을 잘라내고 있는 거다
반복이란 무서운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도 과거를 묻지 않고 손놀림만을 본다
다만 그녀가 저 혼자 있을 때
몸뚱이를 잃은 어두(漁頭)처럼 하늘을 본다는 걸
죽음을 앞둔 물고기들만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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