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우 시

시인뉴스 포엠에 실린 시

네잎 2019. 12. 25. 20:27

하누넘이 외1편 / 박선우

정유진기자 | 입력 : 2019/12/23 [14:44] | 조회수 : 49

 

▲     © 시인뉴스 포엠



하누넘이

 

 

 

 

차르륵 차르륵

물총새가 찍고 간 바다의 음표에 따라

스타카토로 악보가 바뀌면

싱싱한 지느러미들 휙휙 리듬을 탄다

등 푸른 물결도 건반 위로 미끄러진다

싸리꽃 별들이 총총 쏟아지는 날마다

쇠심줄 같은 기억을 붙잡고

정지된 화면이 된 노인이

선혈처럼 붉은 황혼 속을 서성인다

이곳에서 기다림이란 언제나 저녁을 닮았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긴장감

그러나 올 사람은 언제나 오고

오지 않을 사람은 끝끝내 오지 않기에

바다는 전원을 끄고

레퀴엠으로 악보를 바꾼다

노인의 슬픔이 활활 점화된다

별들이 일제히 제물로 제 몸을 던진다

슬픔을 배척하던 바람이 숨을 죽이니

우후죽순 자란 그리움은

저녁 불빛 쪽으로 몸을 뉘인다

무겁고 장중한 제의가 끝나자

노인은 뒤돌아서고

바다는 언제 그랬나는 듯

슬로우 퀵퀵, 아주 조금 빠르게

물의 춤을 춘다

*신안군 비금도 해변 왈츠 촬영지

 

 

 

 

시아바다

 

 

물결의 행간마다 푸른 문체들이

미완성인 부호를 찍어내고 있다

청자 빛이 돌면 쉼표는 서술로 바뀐다

촘촘한 문장들이 전설로 살아나고

홍어철만 되면 물살이 빠르다

함부로 머리를 내밀다간

파도와 파란에 휩쓸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비에 닫고 만다

최초의 생이 경건하게 오갔던 자리

역설처럼 너무나 아름답게

절벽을 품고 있다

홍어의 붉은 살이 차오른다

사람들의 구미가 당겨지고

바다가 격동한다

한통속인 바람을 부추기며

모든 길을 지워버린다

이때를 조심하라

날마다 밑줄을 그으며

표해시말을 쓰고 있는

시아바다를 묵독했다면

생의 반환점을 겨우 돌았을 뿐이다

홍어는 당신의 생이 표류할 때

가장 톡 쏜다

 

 

 

 

약력 : 박선우

 

신안에서 태어났으며 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 「하나님의 비애가 있다

전북해양문학상」「제주기독문학상」「목포문학상 남도작가

열린시학상수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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