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노예 12년', 믿을 수 없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다 출처 SBS funE 작성 김지혜 기자 입력 2014.02.24 18:13
[SBS funE | 김지혜 기자] 미국 노예제도의 참상을 알린 동시에 남북전쟁의 촉매제가 된 문학소설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1852)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가려진 비운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바로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노예 12년'(1853)이다.
영화 '노예 12년'(감독 스티브 맥퀸)은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음악가 '솔로몬'과 노예 '플랫'이라는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실화를 그린다.
노섭의 억울한 사연을 이해하는 데는 1800년대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도를 따르는 남부의 노예주(州)와 그렇지 않은 북부의 자유주(州)로 나뉘어 있었다.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기 이전의 미국은 목화생산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재배와 수확에 필요한 노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로 인해 노예들은 물건처럼 사고 팔렸다.
'노예 12년'이 특별한 것은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지난한 여정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진 데 있다. 영화는 노섭의 극적인 탈출기가 아닌 생존의 나날들에 초점을 맞췄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섭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본다. 노예수용소로 끌려간 노섭은 자유인인 신분을 입증하려 하지만, 증명서가 없기에 불가능하다.
북부 출신인 그의 눈에 비친 남부는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한 나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흑인은 시장에서 물건처럼 값을 매겨 거래되고, 팔린 노예는 주종관계로 사람에게 귀속된다. 노섭은 오랜 시간 반항하고, 투쟁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진 매질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목화밭은 미국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터전은 지배층에겐 백인에겐 부와 번영의 기운이 가득한 기회의 땅이지만, 피지배층인 흑인 노예들에겐 피와 땀을 쏟아낸 전쟁터와 다름없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권리가 어떤 이에겐 인생 전부를 바쳐 얻은 소중한 가치임을 영화는 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와 남겨진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악명 높은 농장주 '에드윈'으로 분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노예 '팻시' 역할의 루피타 니용고도 치웨텔 에지오포 만큼이나 인상적인 열연을 펼쳤다. 패스벤더는 광기를 살의를 넘나드는 악을 시각적으로 재현했으며, 니용고는 한과 설움이 응집된 감정 연기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연출은 맡은 스티브 맥퀸은 '헝거'와 '셰임'를 통해 개성을 드러낸 뒤 '노예 12년'을 통해 역량의 날개를 펼쳤다.
영국 태생의 흑인인 감독은 원작에 대한 완벽한 해석과 이해로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이야기 전개는 느리게, 극적인 장치들은 최대한 절제해 드라마틱한 탈출기가 아닌 한 인간이 처한 비극과 삶의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더불어 한 인간의 주체성과 신념, 희망을 그리는 데도 충실했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접근이다.
'노예 12년'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만든 제작사 플랜비의 작품이기도 하다. 피트는 제작은 물론이고 영화에도 조연으로 출연해 감독과 배우를 지원했다. 이 작품은 내달 2일 열리는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개봉 2월 27일, 상영시간 134분, 15세 관람가.
ebada@sbs.co.kr
영화 '노예 12년'(감독 스티브 맥퀸)은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음악가 '솔로몬'과 노예 '플랫'이라는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실화를 그린다.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 분)은 자유인으로 태어나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산다. 1841년, 그는 공연을 제안받아 간 워싱턴에서 사기, 납치를 당해 노예수용소로 끌려간다.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 솔로몬은 자유인 신분은 물론 이름마저 빼앗긴 채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로 보내진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아니었던 솔로몬은 '플랫'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12년에 이르는 생존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노섭의 억울한 사연을 이해하는 데는 1800년대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도를 따르는 남부의 노예주(州)와 그렇지 않은 북부의 자유주(州)로 나뉘어 있었다.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기 이전의 미국은 목화생산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재배와 수확에 필요한 노예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로 인해 노예들은 물건처럼 사고 팔렸다.
1790년대 여섯 개에 불과하던 노예주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60년에 이르자 열다섯 개가 되었고, 1790년부터 1808년까지 18년 동안 무려 8만 명의 노예가 수입됐다. 결국 1808년에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미국 내 자유주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로 팔아넘기는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노예 12년'이 특별한 것은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지난한 여정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진 데 있다. 영화는 노섭의 극적인 탈출기가 아닌 생존의 나날들에 초점을 맞췄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섭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본다. 노예수용소로 끌려간 노섭은 자유인인 신분을 입증하려 하지만, 증명서가 없기에 불가능하다.
북부 출신인 그의 눈에 비친 남부는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한 나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흑인은 시장에서 물건처럼 값을 매겨 거래되고, 팔린 노예는 주종관계로 사람에게 귀속된다. 노섭은 오랜 시간 반항하고, 투쟁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진 매질뿐이다.
노예 '플랫'의 삶을 부여받은 노섭은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생존의 방식이 아닌 '살아야 한다'는 생존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살아야만 했고, 자유인이 되기 위해 주인에게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인권을 구속당한 상황 속에서 그를 지탱한 힘은 '자유'에 대한 강력한 의지뿐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목화밭은 미국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터전은 지배층에겐 백인에겐 부와 번영의 기운이 가득한 기회의 땅이지만, 피지배층인 흑인 노예들에겐 피와 땀을 쏟아낸 전쟁터와 다름없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권리가 어떤 이에겐 인생 전부를 바쳐 얻은 소중한 가치임을 영화는 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와 남겨진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노섭이었으나 플랫으로 살아야 했던 비운의 인물을 연기한 치웨텔 에지오포는 마치 자신의 삶이었던 것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며 영화를 빛낸다. 억울함과 공포에 짓눌린 얼굴은 체념과 회환을 거쳐 강인하고 집요한 결의로 바뀌는데 그 하나하나의 감정이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악명 높은 농장주 '에드윈'으로 분한 마이클 패스벤더와 노예 '팻시' 역할의 루피타 니용고도 치웨텔 에지오포 만큼이나 인상적인 열연을 펼쳤다. 패스벤더는 광기를 살의를 넘나드는 악을 시각적으로 재현했으며, 니용고는 한과 설움이 응집된 감정 연기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연출은 맡은 스티브 맥퀸은 '헝거'와 '셰임'를 통해 개성을 드러낸 뒤 '노예 12년'을 통해 역량의 날개를 펼쳤다.
영국 태생의 흑인인 감독은 원작에 대한 완벽한 해석과 이해로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이야기 전개는 느리게, 극적인 장치들은 최대한 절제해 드라마틱한 탈출기가 아닌 한 인간이 처한 비극과 삶의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더불어 한 인간의 주체성과 신념, 희망을 그리는 데도 충실했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접근이다.
'노예 12년'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만든 제작사 플랜비의 작품이기도 하다. 피트는 제작은 물론이고 영화에도 조연으로 출연해 감독과 배우를 지원했다. 이 작품은 내달 2일 열리는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개봉 2월 27일, 상영시간 134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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