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 2018-2019

문정희 / 머리 감는 여자외1

네잎 2014. 3. 16. 22:24

머리 감는 여자

풍성한 다산의 여자들이

초록의 밀림 속에서 죄 없이 천년의 대지가 되는

뽀뽈라로 가서

야자잎에 돌을 얹어 둥지 하나 틀고

나도 밤마다 쑥쑥 아이를 배고

해마다 쑥쑥 아이를 낳아야지

검은 하수구를 타고

콘돔과 감별당한 태아들과

들어내 버린 자궁들이 떼지어 떠내려 가는

뒤숭숭한 도시

저마다 불길한 무기를 숨기고 흔들리는

이 거대한 노예선을 떠나

가을이 오기 전

뽀뽈라로 갈까

맨 먼저 말구유에 빗물을 받아

오래오래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 그대로

천년 푸르른 자연이 될까

mjh12.jpg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 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있는

땅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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