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반사경 외 1편
이 영 옥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곳에 너는 서 있다
보이지 않는 파경을 붙들고 나를 기다린다
동공에서 사물이 확대된다는 것은
이미 감정의 기형이 시작된 것이니
커브를 돌던 조바심으로 이루어진 거울이여
생이 반듯하게 와서 반듯하게 멀어지면 좋겠지만
휘어져 들어온 것이 마음 전체를 차지할 때
튀어나온 이마와 찢어진 입이 주인이 되는 법
우리는 같은 불구를 지닌 사람
굴절을 수용하는 것들만 비상할 수 있다
당신이 두고 온 별에 가고 싶다고 우겼을 때
우주별 하나가 필사적으로 달려온 것처럼
우리가 켜둔 작고 쓸쓸한 허공을 향해
헉헉거리며 달려와 솜털구멍 하나까지 확대하는 버스여
너는 이제 허무의 심연을 체험한 포물선이다
우리가 함께 부풀린 물집을 견딜 때
헤엄도 날개 짓도 아닌 움직임이 다가와
힘껏 커졌다가 조용히 멀어졌다
환절기
무채색 깊이로 흐르는 강, 숨찬 그림자가 헐떡인다 들뜬 잇몸으로 끊어낼 수 없었던 물의 가락이 이어지고 당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붉어지던 마음, 그 마음이 꽃이던 시절이 있었다 붙잡지 마라,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게 하고 이별은 이별이 되게 할 때 세상의 빈칸은 혼자인 모서리들을 쏟아낸다 은밀한 것은 마음속에서 사계절을 나는 법. 꽃들의 변화가 상처를 기록한다 진짜 비밀은 전부를 보여주며 자신을 숨기는 것, 강물위에서 뒤채이던 동심원은 돋보기를 바짝 들이대도 초점을 내주지 않았다 우리가 지녔던 출구는 물속을 향해있고 길은 변사자처럼 누워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고백이 꽃가루처럼 날리고 젖어서 부푼 벽은 계절을 닫지 못했다
시인에게 묻다
◾ 요즘 관심 있는 것
관심사라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고려대에서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들불처럼 번져 SNS를 연일 뜨겁게 달구었지요. 급기야 ‘우편향 논란’ 교학사의 ‘한국사’를 교과서로 채택한 수원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었다가 10분 만에 철거된 일이 있었습니다. 여고생들이 쓴 대자보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우리들의 미래가 걸린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운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할까요? 그리고 최근에 본 영화 ‘변호인’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객들이 고통의 연대감으로 눈물을 흘리고, 한편으로는 후련한 쾌감을 느꼈던 이유를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고민하고 해결해나갈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란 대사가 아직도 귓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 시 속 화자로서 ‘나’는 누구 인가요
제가 시를 쓸 때는 내 안의 무의식 하나 하나가 시의 화자가 됩니다. 자전적인 것도 있지만 허구적일 때도 많지요. 사물 속에서 끌어낸 화자를 다시 내 안으로 밀어 넣어 며칠이고 묵혀 두었다가 뱉어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시 속의 화자는 나를 지탱해 주는 나의 모든 것. 즉, 육체와 영혼 그리고 내가 살아온, 또는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살아갈 모든 시간입니다. 시 속 화자로서의 ‘나’를 아슬아슬하게 드러내기와 숨기기의 긴장감을 통해 시를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최근 내게 다가온 시 한 편은?
꽃_ 파울 첼란
돌.
내가 바라본 공중의 돌.
돌처럼 먼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우리는 어둠을 모조리 퍼내었다. 우리는
여름을 지나 올라온 말을 발견하였다.
꽃.
꽃- 눈먼 자의 말,
네 눈, 내 눈,
눈들은
물을 마련한다.
성장.
마음 벽마다
잎이 진다.
이처럼 또 한 마디 말, 종추들은
밖에서 자유로이 흔들거린다.
◾ 2014년에 기대하는 것
최근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의 인터뷰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묵직한 삶의 여정으로 연마된 깃털 같은 자유를 보았습니다. 이 어른이 바로 대자유인이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어 이 아름다운 울림이 오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영옥
2004년 [시작],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사라진 입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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