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심벌즈/ 김네잎

네잎 2019. 5. 6. 23:12

심벌즈

 

   김네잎

 

 

 

첫 악장은 언제나 느리게 시작한다

카페 안에 고이는 B단조의 감정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연주한다

 

몇 개의 음표로 집약된 우리는

클라이맥스의 사생아

가지런한 배열을 안고 동시에 건반을 빠져나온다

 

휴지(休止), 0.5초의 못갖춘마디를 실감하는 자리

 

그리고 무율의 시간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박자를 완벽하게 연주해야 하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당신도 당신의 휴지(休止)를 생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당신의 노래가 나였던 날들은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

아무 떨림도 없이 아무 맥박도 없이

 

그러니 우리의 악보에 도돌이표를 그려 넣는다면

막다른 입장에서 더 이상 길고 슬픈 손가락을 내밀지 않아도 될 텐데

 

끝 악장이 서둘러 뒷모습을 지운다

손바닥만 남겨놓고 당신은 떠난다

 

 

            계간 시현실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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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잎 / 2016영주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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