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벌즈
김네잎
첫 악장은 언제나 느리게 시작한다
카페 안에 고이는 B단조의 감정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연주한다
몇 개의 음표로 집약된 우리는
클라이맥스의 사생아
가지런한 배열을 안고 동시에 건반을 빠져나온다
휴지(休止), 0.5초의 못갖춘마디를 실감하는 자리
그리고 무율의 시간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박자를 완벽하게 연주해야 하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당신도 당신의 휴지(休止)를 생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당신의 노래가 나였던 날들은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
아무 떨림도 없이 아무 맥박도 없이
그러니 우리의 악보에 도돌이표를 그려 넣는다면
막다른 입장에서 더 이상 길고 슬픈 손가락을 내밀지 않아도 될 텐데
끝 악장이 서둘러 뒷모습을 지운다
손바닥만 남겨놓고 당신은 떠난다
계간 《시현실》 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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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잎 / 2016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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