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 2018-2019

이성복

네잎 2013. 5. 21. 22:32

사랑日記

이 성 복



1.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 가지 않을 수도 없을 때

마음이여, 몸은 늙은 風車, 휘이 돌려 보시지

몸은 녹슬은 기계, 즐거움에 괴로움 섞어

잠을 만드는 기계

몸은 벌집, 苦痛이 들쑤신 벌집

몸은 눈도 코도 없지만 몸을 쏘아보는 獵銃과

몸을 냄새 맡는 누리의 미친개들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 가지 않을 수도 없을 때

마음이여, 몸은 낡은 신발 값과 같으니

―當代의 몸값은 신발값과 같으니

當代의 몸이 헤고 닳아, 참으로 연한 뱃가죽 보이누나

2.

한 마리 말을 옭아매는 馬車의 끈은, 끊어지지 않는

馬車의 사랑 馬車의 꿈 사랑한다 가엾은 내……

미끼에 걸린 물고기를 끌어 올리는, 가늘은 낚싯줄은

물고기의 사랑, 사랑은 입으로 말하여지고 사랑은 입을 꿰뚫고

그래, 개를 걷어차는 구둣발은, 구두를 닮은

소가죽의 사랑 픽, 쓰러지며 소가 남긴 사랑

죽은 나무는 자라지 않지만 죽은 나무의 괴로움은 자라고

지금 밀물은 바로 그 썰물이었으며 愛人은

愛人을 닮은 수렁이었고 愛人을 닮은 무딘 칼이었고 愛人을 닮은 不安이었고

그래, 온 몸으로 번지는 每毒의 사랑

문드러지면서 입술이, 허벅지가 表現하는 아기자기한 사랑

어머니, 저의 밥은 따뜻한 죽음이요 저의 잠은 비좁은 壽依요

어머니 저는 낙타요 바늘이요 聖者요 聖者의 밥그릇이요 어머니, 저는

견디어라 얘야, 네 꼬리가 생길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마라, 아픈 것들의 아픔으로 네가 갈 때까지

네 혓바닥은 괴로움의 혓바닥이요 네 손바닥은 병든 나무의 나뭇잎이요

3.

어느날 엄마, 내가 아주 배고프고 다리 아파 목마른 논에

벼포기로 섰다면 엄마, 그 소식 멀리서 전해 듣고 맨발로

뛰어오셔 얘야 가자 아버지랑 형이랑 너 기다리느라

잠 한숨 못 잔단다 집에 가자 내가 잘못했어 엄마, 그러시겠어요?

그러실 테지만 난 못 돌아가요 뿌리가 끊어지면 물을

못 먹어요 엄마,제 이삭이나 넉넉히 훑어가시지요

어느날 엄마, 내 살 길이 아주 가파르고 군데군데 끊어지기도 한다면

엄마, 얘야 내 등에 업혀라 밥 많이 먹고 건강해야지 너만 보면

마음 아프구나 하시며 내 살 길처럼 타박타박 걸어가시겠어요?

엄마 걸어가시겠어요? 발굽이 부러지면

등으로 기어 날 안고 가시겠지만 엄마, 난 못 가요

내 四肢는 못박혀 고름 흘려요

엄마, 어느날 저녁 구름을 밀어내며 얘야

여기 예루살렘이야 痛哭으로 壁을 만든 나의 안방이야

요단, 잔잔하단다 요단, 지금 건너라, 빨리 가시면

내가 건너가겠어요? 어느게 나룻배인가요? 아니예요

그건 쓰러진 누이예요 엄마, 누이가 아파요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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