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시 2018-2019

김춘

네잎 2013. 5. 21. 22:34

김 춘

물길

골짜기가 바람을 한 입 가득 품었다가 내뿜는다. 안개가 피어난다. 안개 너머로 구름이 그윽이 바라본다. 구름 떼가 둥글게 뭉친다. 흘러내리던 둥근 잔해가 뺨에 그대로 매달린다. 단단한 열매다. 열매는 시간을 기르며 익는다. 그 사이 골짜기는 자주 안개를 만들고, 별들의 발길도 잦았다. 다 자란 시간은 열매의 등을 가르고 튕겨 나온다. 시간이 물고 있는 어린 눈빛은 투명하다. 어린 눈빛 속에 너의 어제가 있다.

투명한 눈빛이 눈빛끼리 만나, 계절이 뜨고 지는 골짜기에 물길을 낸다. 나무들 몸을 틀어 물길을 향해 굽는다. 산그늘의 푸른 혀는 무덤 앞에 놓인 꽃을 핥는다. 새보다 더 새같이 우는 짐승이 구름 떼 속으로 사라지고, 밤보다 더 어두워지는 너는 남는다. 너는 헐거운 도시가 흘린 불온. 처벅처벅 물길 속 달빛이 흩어지는 밤은 길다.

―≪리토피아≫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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