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그 나무가 거기 있었다
숱한 매미들이 겉옷을 걸어두고
물관부를 따라가 우듬지 개울에서 멱을 감는지
한여름 내내 그 나무에서는
물긷는 소리가 너무 환했다
물푸레나무 그늘 쪽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한낮을 내려놓고 저녁 나무가
어스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머리를 빗질하려고 문밖으로 나와 앉은
그윽한 바람의 여자와 나는 본다
밤의 거울을 꺼내들면
비취를 퍼 올리는 별 몇 개의 약속,
못 지킨 세월 너무 아득했지만
내 몸에서 첨벙거리는 물소리 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도 얼비치던 그 여자의 푸른 모습,
나무가 거기 서 있었는데 어느 사이
나무를 걸어놓았던
흔적이 있던 그 자리에
나무 허공이 떠다닌다, 나는
아파트를 짓느라고 산 한 채가 온통 절개된
개활지 저 너머로 본다
유난한 거울이 거기 드리웠다
금세 흐리면서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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