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유경애/ 여자도 홍련

네잎 2020. 1. 15. 21:34

여자도(汝自島) 홍련


윤경예



꼬막 캐는 여자 몸에서 자란다는 홍련이 있다
홍련의 꽃대 위에서 달의 언덕이 자랐다


빛보다 어둠에 먼저 가 닿은 별자리로 왔다는
꼬막들, 아랫도리 다 젖는 것도 모른 채
달을 숨기고 꽃을 들키려고
여자도(汝自島)로 들어왔다고 한다


포말로 흩뿌려진 남편은 잊은지 오래됐다고
그녀를 벗은 뻘배가 파도 쪽으로 머리를 둘 때
갯뻘 해안선은 눈부시게 깊어졌다


깊어진다는 것은 주름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꼬막 골처럼 눈을 슬쩍 감아주는 것이다
오늘도 물길을 놔버린 수평선처럼
서로 넘어뜨리며 한 몸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꼬막 캐고 돌아온 자리, 개흙 뒤집어써도
밀물은 갯뻘 냄새마저 말갛게 씻어준다
홍련 오는 동안, 추위가 발등을 뒤덮어도
뒤꿈치는 가벼워지고 발톱은 갈라지지 않았다


홍련이 피었다 진다 저 노을이
뻘에 빛을 처바르는 일
해안선을 친친 감고 나오는 큰 꼬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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