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보고서(외 1편)
강 주
입구에는 종이학이 매달린 줄이 늘어뜨려져 있다. 종이학이 품고 있는 하늘이 세로로 규칙적이고 깨알같이 적힌 이름 외 메모들. 영원히 너를 만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무채색이야, 라고 흔들린다
베이킹파우더 속 미량의 알루미늄은 나의 일용할 양식과 무관하다. 문득 나는 손발이 저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관절통을 앓을 뿐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하는 씨앗에 대한 동화를 읽으며 어른이 되어간다. 무료체험이 가능한 과수원으로 가 유료의 과일을 따는 것처럼
먼 훗날
서로의 궤도를 맴돌며
각자의 이해력으로 수확한 열매를 바라보며 이 열매는 미래로 들어가는 문, 머리가 둘 달린 뱀, 숫자 0, 두 사람이 마주잡은 손이라고 믿는다. 대모험의 시작에 불과한 오늘을 흔들며
너는 빛나는 달을 머리에 쓴다. 정월 대보름 직후여서 가능한 헬멧이고 너만의 경의의 표시. 또 한 마리의 종이학을 접어
어둠은 생동감을 가질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불어넣는 경적과 만삭의 곡선이 연쇄적으로
무작위의 오늘을 써 내려가며
유리구슬이 굴러간다
*폴 오스터, 「내면 보고서」
큐브의 경우
네모를 던지면 마음이 사라질까. 다섯 개의 눈동자가 흩어졌다 모였다. 네모와 몇 개의 네모가 모이면 만들어지는 것들. 뼈를 던지는 경우의 수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
우리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빛이며
액체의 가능성과
변하고 나누어지며
일렬이거나 흩어지는
360° 궁금한 얼음
보라색으로 실험할 수 있는 목록: 머리털감정입술손톱블라우스노을홀수外
모서리를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모을 것
서로를 도래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사라진 사람들은
던지기에 알맞은 미지수였다
비닐우산을 접으면
젖은 현관은 지워질까
안팎의 손잡이를 맞잡으면
비와 눈이 동시에 내릴까
서로를 디디며
모서리를 일으키는
소수의 사람들이 녹고 있었다
겨울은 멀리 달아나고
혼잡한 거리에서 섞이고 있는 물감처럼
굳어버린 이미지처럼
13쪽 9째 줄 눈동자와
닿아있는 몸의 일부
당장 견뎌야 할 전부였다
⸺계간 《시산맥》 2019년 여름호, ‘시여,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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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 2016년 정남진 신인문학상으로 《시산맥》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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