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히다
“지금 화장 중입니다”
승화원 전광판에는 뜨거운 불길이 일고
한곳에 모인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
전광판이 바뀌고
눈물이 마르기 전 냉각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철제 침대가 끌려 나왔다
붉은 장미로 채운 관과 황금빛 수의는 간곳없고
주검을 눕힌 그 자리
타다만 뼈 몇 개와 재만 놓여 있었다
익숙하게 유골을 수습하는 그 남자
빗자루로 쓸어모은 뼛조각을 분쇄기에 갈고
재가 담긴 흰 종이를 서너 번
약봉지처럼 접는 시간은
딱 5분이었다
철 따라 챙긴 녹용과 개소주 온갖 한약재들
살과 뼈를 짓던 그 보약도
79세 어머니를 접고 거뭇한 재로 남았다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던 배짱과
꼬장꼬장 큰소리치던
질긴 고집은 불에도 녹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 한 줌으로 접힌 어머니
손에 받아든 파란만장이
그토록 가벼운 줄 처음 알았다
<시와 징후> 2025. 가을호
'좋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록입홍합 외 9편/ 마경덕 (0) | 2022.02.17 |
|---|---|
| 제3회 김종삼시문학상 / 길상호 시인 (0) | 2020.04.08 |
| 유경애/ 여자도 홍련 (0) | 2020.01.15 |
| 소금쟁이의 노래 (0) | 2019.07.14 |
| 내면 보고서/강주 (0) | 2019.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