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우 시

2013 시와사람 69호 실린 시

네잎 2013. 9. 25. 21:33

1,저수지의 꿈

본디 물은 흐르는 습성이 있는지라

감옥에 갇힌 장기수처럼 출옥을 꿈꾼다

누군가 삽질 한 번으로 물꼬만 터준다면 흘러서

바다와 섞이고 싶다 통정도 하고 싶다

어쩌다 8,15특사로 사면되듯

사면되는 날도 있었지만

형량도 없이 불모처럼 갇힌다는 것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물이다

흘러야 하는 본성을 지닌 물이다

본성을 억압당하는 그런 악습이라면

그는 무슨 일을 할지

언제고 기회만 오면

그는 범람을 꿈꿀 것이다

 

 

 

2,산뽕나무

범행 장소를 다시 찾은 범인처럼

두 여자에게 토막토막 살해당한

산뽕나무 살던 곳

맘 한 켠 찜찜해 찾아가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서였다

봄기운에 나섰다가 충동적인 사건이다

살해 동기는 몸에 좋다는 뿌리였다

순식간에 밑 둥을 톱질하고 곡갱이로 뿌리를 뽑아

잔가지까지 토막토막 잘라내 사이좋게 나눈 두 여자

집에 와 펼쳐놓자 산삼뿌리 같은 향이 집안 가득

그제야 산뽕나무 슬픔이었고 눈물이었다는 것을

죄의식도 없는 인격 장애자나 다를 바 없는

범죄였음을 시인했다 용서 할 수 없는

보고 싶지 않다며 산이 뒤돌아 앉는다

떡갈나무 참나무 향나무 소나무 길을 막고

입산금지란다 한발자국만 옮기면 찌를 것 같은 기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