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우 시

2013 열린시학 68호에 실린 시

네잎 2013. 9. 25. 21:35

가물치

무엇이 동했는지 철쭉을 피우던 봄볕들이 저수지로 내려왔다

좀체 몸을 들어내 보지 않던 가물치도 무엇이 동했는지

물 위로 올라와 봄볕에게 굳은 관절을 풀고 있다

봄볕의 손끝이 지날 갈 때마다 나무껍질 같은 비늘들이

벌름벌름 숨을 쉬고 가물치도 저수지도 춘곤증에 잠시 방심하는 사이

사촌 오빠도 동했나 단 한발의 총성으로 저수지와 가물치를

절단내버린 소요 시간은 10분 달팽이관이 파열된 저수지는

뱅글뱅글 팽이처럼 돌았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물 위로 떨어지는 가물치도 뱅글뱅글 찰나의 우주도 뱅글뱅글

장장 열 근이나 되는 가물치회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먹어 볼 수 없는 자연산이라며

원샷에 또 원샷을 외친다

파열된 저수지의 달팽이관은 쉽게 완치가 될 수는 있을지

다음날 저수지에는 소리를 장악하던 황소개구리도

찰방찰방하던 물오리도 없다

파편에 맞은 몇 조각의 햇볕들만 물 위에 떠 있고

저수지는 폐허처럼 고요하고 적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