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치
무엇이 동했는지 철쭉을 피우던 봄볕들이 저수지로 내려왔다
좀체 몸을 들어내 보지 않던 가물치도 무엇이 동했는지
물 위로 올라와 봄볕에게 굳은 관절을 풀고 있다
봄볕의 손끝이 지날 갈 때마다 나무껍질 같은 비늘들이
벌름벌름 숨을 쉬고 가물치도 저수지도 춘곤증에 잠시 방심하는 사이
사촌 오빠도 동했나 단 한발의 총성으로 저수지와 가물치를
절단내버린 소요 시간은 10분 달팽이관이 파열된 저수지는
뱅글뱅글 팽이처럼 돌았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물 위로 떨어지는 가물치도 뱅글뱅글 찰나의 우주도 뱅글뱅글
장장 열 근이나 되는 가물치회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먹어 볼 수 없는 자연산이라며
원샷에 또 원샷을 외친다
파열된 저수지의 달팽이관은 쉽게 완치가 될 수는 있을지
다음날 저수지에는 소리를 장악하던 황소개구리도
찰방찰방하던 물오리도 없다
파편에 맞은 몇 조각의 햇볕들만 물 위에 떠 있고
저수지는 폐허처럼 고요하고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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