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 김명인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그 나무가 거기 있었다 숱한 매미들이 겉옷을 걸어두고 물관부를 따라가 우듬지 개울에서 멱을 감는지 한여름 내내 그 나무에서는 물긷는 소리가 너무 환했다 물푸레나무 그늘 쪽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한낮을 내려놓고 저녁 나무가 어스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머리..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23
아들에게 / 이승하 취해서 귀가하는 어느 밤이 온다면 집에 당도하기 전에 꼭 한 번 하늘을 보아라 별이 있느냐? 별이 한두 개밖에 없는 도회지의 하늘이건 별이 지천으로 돋아난 여행지의 하늘이건 뼈아픈 별 몇이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 그 별에게 눈 맞춘 다음에야 벨을 눌러야 한다 잠이 들어야 한다 아..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23
장마 / 강경호 장마 어디서 왔는지 철딱서니 없는 누런 고양이 새끼들이 담장 아래 어린 상추를 짓밟아 놓았다 며칠 전부터 정원 풀밭을 솔솔 기던 감자만한 생쥐도 물어다 놓았다 그놈들이 마파람에 건들거리는 나팔꽃을 무슨 짐승쯤으로 생각했는지 앞발을 들고 권투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며칠 동..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23
소망산부인과 / 진해령 소망 산부인과 ---------------- 진해령 낡은 타일 벽 위 야간응급실 등이 히끄무레하게 켜져 있다 돌이켜보면 생은, 주간에도 늘 캄캄했고 응급 아닌 적 없었다 정문은 일쑤 타인의 것이므로 쪽문을 통해 어둑신한 복도를 들어선다 참, 공평하기도 하지 시작한 자세로 끝낸다는 것 비닐시트..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23
유병록 <1>-붉은 달/유병록-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는 대지가 꺼내놓은 수천 개의 심장 그러니까 오래전 붉은 달이 뜬 적 있었던 거다 아무도 수확하지 않는 들판에 도착한, 이를테면 붉은 달이라 불리는 자가 제단에 올려놓은 촛불처럼, 자신이 유일한 제물인 것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던 거..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19
새로운 시와 지루한 시 / 이승하 새로운 시와 지루한 시 이승하 ‘모방은 죽음이다’란 말이 있다. 시란 시시해서는 안 된다. 내용에서건 형식에서건 조금이라도 새로운 구석이 있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시는 상상력을 빈곤을 말해줄 따름이다. 하지만 새로움이 시의 진정성을 무시한, 이를테면 실험을 위한 실험이라면 ..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13
트럭 / 하린 트럭 / 하린 트럭, 하고 공기를 토하면 거대한 밤이 질주해온다 살다보면 폭력적인 기계를 몰고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싶은 밤은, 꼭 온다 너는 비행소년에서 비행청년으로 자라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엔진으로 장착한다 방향지시등이 고장 난 삶에서 넌 애인에게 예민한 급소를 들킨..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2.13
[스크랩] 62호 ?깔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 색깔 있는 시 읽기 _ 사투리시 _ 강원도편 형수 이상국 서둘러 저녁이 오는데 헐렁한 몸빼를 가슴까지 치켜 입고 늙은 형수가 해주는 밥에는 어머니가 해주던 밥처럼 산천(山川)이 들어있다 저 이는 한 때 나를 되련님이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쥐눈이콩 한 됫박을 비닐봉지에 넣어주며 .. 신춘문예시 2018-2019 2014.01.13
[스크랩] [제18회 전태일 문학상] 높은 바닥 外 4편 / 장성혜 산사나무 / p r a h a 제18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 높은 바닥 外 4편 / 장성혜 높은 바닥 / 장성혜 그래, 올라와 징그러운 몸뚱어리로 여긴 이 아파트 꼭대기 층 화장실이니 더는 치고 올라갈 바닥도 없는 끝이니 오라고 탈주극 주인공같이 하수관을 타고 기어오르라고 불을 켜는 순간 배수구.. 신춘문예시 2018-2019 2013.07.07
[스크랩] 봄에 관한 시 모음 봄에 관한 시 모음 봄 김기택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이 남아있는 3월 양지쪽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네 발을 모두 땅에 대고 햇볕에 살짝 녹은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다 힘껏 앞으로 뻗은 앞다리 앞다리를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뒷다리 그 사이에서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 신춘문예시 2018-2019 2013.06.04